“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다.”대부분의 저널리즘 교과서가 인용하는 오래된 격언이다. 일반적 현상보단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사건이 뉴스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격언의 유효기간이 끝난 듯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온라인으로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 지금 시대엔 사람이 개를 무는 드문 일보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무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 행위 맥락과 영향이 더욱 중요하다. 장난스레 자신의 반려견을 살짝 깨무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고 언론들
어떤 사안에 대한 찬성(지지) 혹은 반대(비판)의 입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 과정을 알기 위해선 어떻게 그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만일 그 과정을, 입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그건 입장이라기 보단, 그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가깝다. 호불호의 감정을 갖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다.호불호와 입장의 개념을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이 차이가 정치와 공론장의 상태를 진단하는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호불호를 유발하고 있을까,
지난해 7월 언론사를 퇴사해 같은 해 11월, 지금 일하고 있는 정책연구소에 취업했다.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하듯 연구원으로 성공적인 전직을 하려면 ‘연구’를 잘 해야하지만, 연구할 주제를 찾는 일부터 쉽진 않았다. 그러던 중 평생 살아온 서울에서 주거지를 제주도로 옮긴 지난 5월부터 ‘기본소득의 재원안’을 마련하는 연구에 착수했고, 5개월 동안의 연구를 통해 지난 10월28일 ‘2021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월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국민기본소득제’ 정책을 발표했다.개인적으로 봤을 때 연구 주제를 정하는 일이 기사감을 찾는 것과
법정에서 변호사가 물었다. “보도 내용을 얘기해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는 밝힐 수 없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말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재차 압박했다. “누구인지 얘기를 안 하면 허위 사실의 보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처벌 대상인지는 잘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고 답했다.8년여 전 강용석 변호사가 중앙일보 기자를 무고한 죄로 재판을 받을 당시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변호사와 나눴던 문답의 내용이었다. 당시 강 변호사쪽의 변호인은 내가 썼던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찾으려 했고, 그 과
한동안 ‘회색론자’로 분류되는 상황에 괴로웠다. 분명 검찰개혁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서초동에도 광화문에도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 내 자신을 결코 회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엔 회색만 있지 않다. 다채로운 총천연색들이 존재한다. 왜 그 색채들이 ‘마이너’가 돼야 하고 검은색과 흰색만 ‘메이저’가 돼야 할까. 그게 진정한 나의 문제의식이었다.먼저 다양한 색들을 살펴보기 전에 검찰개혁조차 ‘흑백’ 논란으로 달성될지 의문이다. 검찰개혁 과제라고 일컬어지는 특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 피의사실공표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5년과 2016년에 한 차례씩 대학교 심리학 교양과목에서 ‘직업으로서 기자'를 소개하는 특강에 간 적 있었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진행된 두 번의 특강엔 모두 100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이 참석했고, 그 학생들은 과제로 A4 용지 한 장 이상의 소감문을 제출했다. 놀랍게도 두 특강 소감문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된 문장은 ‘기자라면 그저 기레기인 줄 알았다'였다. 필자의 강연 주제가 언론을 향한 불신·혐오가 아니었는데도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밝혔다. 내 강연을 어떻게 들었을까 궁금해
개인적으로 딸 입시 논란이 있기 전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보도들을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평소 조국 후보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에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국 후보자의 말과 글뿐 아니라 논문까지도 상당히 찾아서 읽은 편이었다. 진보적 법학자로서 그를 평가한다면 ‘법이 가진 자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법을 통한 정의실현을 위해 싸운 지식인’이라고 봤다. 이렇게 볼 만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일례로 한국은 정리해고에 반대해 비폭력적 쟁의를 한 노동자들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 유일한 사회다. 이 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으나 노조를 ‘귀족’과 동일시해 혐오하는 이 사회에선 관심을 가지는 전문가 자체가 희귀했다. 반면 그는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비판’이란 논문으로 전문가로서 기존 법리에 도전했다. 삼성 X파일의 통신비밀보호법 적용, 소비자불매운동의 법적인 지위 등에서도 활발하게 논문을 쓰며 정의에 부합하는 법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을 나름 감사해하기도 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막말·여성 비하 동영상을 월례조회에서 직원들에게 보여줬단 보도가 나오고 나서 한국콜마의 첫 사과문이 9일 나왔다. 사과문 내용을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잘못된 사과문의 전형적 요소를 두루 갖춰서다.일단 한국콜마 사과문엔 사실 확인이 없다. 사과문에는 분노 지점에 대한 사실 확인과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 당초 이 사안을 처음 보도한 JTBC 뉴스는 윤 회장이 강제로 임직원들에게 보여준 동영상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전했다. 이후 서울신문은 윤 회장이 “(연구직과 사무직이 많은) 서울 사람들은 지성이 높아서 이
조선일보에선 ‘삼성 X파일’ 사건 특종 기자는 이상호 전 MBC 기자가 아닌, 이진동 전 조선일보 기자다. 삼성 X파일은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특정 대선주자와 검사들에게 불법 자금을 주기로 모의한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이 파일을 입수한 이는 이상호지만 이 사건을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으로 되치기한 이는 이진동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두 프레임 대결은 법조계로 넘어간 이후 조준웅 특검은 이건희의 차명 재산을 실명 재산으로 바꿔줬다. 황교안 당시 중앙지검 제2차장이 지휘한 수사는 뇌물 검사와 삼성 죄엔 눈 감
취업준비생 시절 언론사의 조직 문화는 위계적이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언론사에선 누구에게든 ‘님’자를 빼고 부르는 문화가 있고, 그건 알 권리를 가진 독자를 대변해 누구 앞에서든 주눅 들지 말라는 취지라고 들었다. 선후배 사이 격의 없는 토론으로 논조를 정하고, 기사를 쓸 것이라 생각했다.그런 기대가 깨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 만난 ‘멘토’(회사가 신입기자 교육 담당자를 이렇게 불렀다. 신입기자들이 붙이거나 쓰던 호칭은 아니다)는 출근 첫 주에 “너희 월급에 욕먹는 값이 들어있다”고 선수를 쳤다. 신입들을
미디어오늘/지긋지긋한 꼰대정치를 끝장내자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내가 이십대를 보낸 그 곳, 대학들이 밀집한 대표적인 대학가에서 3선을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86세대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젊은 정치인의 국회 진입이 어려운 이유로 “과거 청년 발탁 사례를 성공적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많다. 장하나·김광진 전 의원을 청년 비례로 데려왔는데, 청년 세대와 소통하는 게 아니라 자기 관심 있는 활동을 주로 했다. 그런 사람들을 세대 대표 경선을 해서 데려와야 하느냐를 두고
한 달 쯤 전에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가 무심코 앞에 켜져 있는 TV를 봤다. 마침 보도채널에서 정치 뉴스가 연달아 나오고 있었다. 그날 이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과 같은 당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유출이었다. 황 대표가 다른 정당의 대표들과 함께 만나고 싶지 않고 대통령과 일대일로만 만나겠다고 고집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는 단둘이 찍힌 사진으로 대통령과 급이 비슷한 지도자이면서도 반대 진영의 대표자란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걸까. 강 의원은 왜 외교 기밀을 유출했을까. 청
양육자로서 동네 놀이터에 나가는 일이 잦다보니 처음 마주치는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처음 관계를 맺는지 관찰하게 된다. 많은 아이들이 대여섯 살만 되어도 첫 질문을 이렇게 던진다. “너 몇 살이야?”어른들이 자주 아이들에게 나이를 물으니 자기들 사이에서도 그게 궁금했던 걸까. 많은 경우 그게 아니었다. 나이를 묻고 난 뒤론 “내가 형(혹은 언니)이야”라고 위계를 확인한다. 위계가 아닌 그냥 서로 간의 호칭을 확인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대부분 아니었다. 형이나 언니, 오빠나 누나에게 “야” 혹은 이름을 부를 땐 아이들 혹은 주
사회부 기자로 경찰서를 출입하던 시절에 내게도 수습기자가 배정됐다. 그 수습기자는 주요 사건·사고의 취재 내용을 내게 보고하고, 기사로 쓸 만한 아이디어를 발제했다. 하루는 그가 ‘가출 청소년에겐 잘 곳이 필요하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의 PC방, 찜질방 출입을 허용하라’는 내용을 기사로 발제했다. 난 그때 매뉴얼대로 수습기자를 상대했다. “어떤 사실을 전달하려 하는지”, “기사와 칼럼을 혼동한 것이 아닌지” 등을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런 취지를 밝혔다.“가출 청소년들을 따라다니며 많은 얘기를 듣다보니 그들이 겪는 성폭력과 착취
대학생 시절에 했던 ‘알바’ 중 하나가 토론 방송 방청이었다. 2008~2009년 주로 방청했는데 한번 참여하면 4만원을 받는 당시로선 괜찮은 알바 자리였다. 방청할 기회를 추첨을 통해 줬고 한 달에 두 번 이상 방청은 불가할 정도로 인기 있는 알바였다. 필자로선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하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날 방청을 갔는데 마침 그날 토론 주제가 ‘복수노조 허용’이었다. 공대생이었던 필자에겐 생소한 주제였다. 노동계 패널들은 ‘한 기업 안에 단 하나의 노조만 있어야 한다는 대한민국의 법규는 주요 선진국은 물론 웬만한 국가에...
지만원이란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어느 시대나 극악한 인간은 있었다. 그런 인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궁금해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비극을 겪은 힘든 사람들을 모욕하며 살아가는 지만원이란 인간이 어떻게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지게 됐는지를 질문하고 싶다. 5·18은 역사적·정치적 평가가 끝난 사안이다. 명칭서부터 그 평가가 드러난다. 사건 초반 5·18을 부르는 주된 명칭은 ‘광주사태’였으나, 이젠 정부 문서에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표기된다. 어느 사안이나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확정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열 명이서 똑같이 1억원씩 돈을 내서 빵 공장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공장에서 만든 빵이 인기를 얻어 공장을 확장하고, 건물 사고 가게도 새로 냈다. 이런 의사결정은 기업 경영진이 한다. 이 기업에선 누가 경영진을 맡았을까. 출자자 열 명 중에 셋이 가족이었다. 이들은 지분 30%로 최대주주 자격을 얻었고, 그 자격으로 이사회와 경영진을 장악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셋은 빵의 원재료를 공급하는 업체를 따로 만들었고, 빵 제조기술의 노하우를 활용해 최고급 빵 브랜드를 담당하는 업체도 따로 설립했다. 사업 확장 때마다...
과거 기업의 마케팅은 온전히 직원의 몫이었다. 기업의 마케팅팀이 전략을 짜고 직접 실행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마케팅은 더 이상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기업의 마케팅팀은 업계나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인플루언서)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어떤 상호 작용을 하는지를 주로 고민한다. 사람들을 더 이상 정보의 수용자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마케팅 관점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지만 정작 한국 언론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me...
처음엔 대동강 물을 파는 것보다 신기해 보였다. 19~29만원의 4개월 회비를 내고 독서모임을 한다니 과연 그런 수요가 얼마나 될까. 저런 사업이 지속가능하고 확장성이 있을까. 이런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독서모임 스타트업인 ‘트레바리’는 무섭게 성장했다. 유료회원이 2015년 40명에서 3년 반 만에 4600명까지 늘었다. 이 회원들이 19만원씩만 내도 4개월 매출이 9억원에 육박한다. 특별강연, 음료 판매 등 부가서비스를 고려하면 연 매출도 상당한 규모다. 이런 성장세와 잠재력을 주목해 지난달 12일엔 소프트뱅크벤처스, ...
십 년 전인 2009년에 대학에서 마지막 두 학기를 보냈다. 입학할 때는 한 학기 300만원대 중반의 등록금이 졸업을 앞두고는 500만원에 육박했다. 이미 10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두 학기 수업료를 더 대출 받았다. 고맙게도 한국장학재단은 생활비로 100만원까지 학자금과 동일한 금리(5.9%)로 대출을 해줬다. 마지막 학기에 이미 2000만원이 넘는 채무자로서 매달 이자가 10만원 넘게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라 한국은행이 지속적으로 내린 기준금리는 2%에 불과했는데도 ‘내 금리는 학생이라 높은 건가’라는 의...